모든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깊은 답답함과 영적 침체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간절히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입술이 굳어버린 것처럼 기도가 전혀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 막막하여 입을 열어도 그 목소리가 허공에 대고 독백을 하는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입니다. 큰 결단을 내리고 기도를 시작하지만 몇 마디 말을 채 이어가지 못하고 금방 말문이 닫히는 경험은, 오랫동안 뜨겁게 기도해 왔던 신실한 성도들조차 종종 겪게 되는 막막한 신앙의 터널입니다.
수많은 성도가 이러한 영적 막힘 속에서 머릿속 가득 세상의 염려와 근심만을 채운 채 괴로워하곤 합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하고 영적인 교제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흐름이 툭 끊어진 채로 마지못해 형식적인 중언부언만 반복하다가 씁쓸하게 기도의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하늘 문이 닫힌 것처럼 기도가 막혀 답답해하고 계십니까? 그 거친 광야의 자리를 뚫어내고 다시 뜨겁게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영적인 돌파구가 성경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1. 완벽함을 내려놓고, 아주 짧고 서툰 고백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가 완전히 막혀 사방이 벽처럼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화려하고 거창한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나 자신을 쥐어짜며 애쓰기보다 아주 짧고 정직한 한 마디 고백으로 출발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포장지를 모두 벗겨내고 "하나님, 지금 제 마음이 이토록 무겁고 힘이 듭니다"라는 가감 없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이 위대한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가 완벽한 종교적 언어로 유창하게 기도하지 못할 때조차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신실하신 도우심을 확신한다면 기도가 막혔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죄책감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짧고 투박한 한마디의 정직한 고백에서부터 하나님과의 대화가 다시 물꼬를 트기 시작하며, 그 작은 대화는 조금씩 성령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 기도의 짐을 스스로 짊어지기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는 문장의 형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세련된 웅변이 아니라 마음의 고백과 영의 흐름으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린도전서 14:15)
짧고 서툰 고백일지라도 하나님은 오직 그 중심에 담긴 진심을 가장 귀하게 받으십니다.
사실 저의 실제 삶 속에서도 정말 어느 날은 입술이 본드로 붙어버린 것처럼 단 한 마디의 기도도 터져 나오지 않는 처절한 영적 고립을 경험한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내 삶의 무거운 문제들과 아픈 상황들이 사방으로 압박해 올 때는 기도의 무릎조차 꿇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격식을 내려놓고 마치 가장 가까운 친한 친구에게 내 아픔을 털어놓듯이, 있는 모습 그대로 몇 마디를 하나님께 툭 던지며 고백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그때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내 힘으로 기도를 짜내려 할 때는 막혔던 입술이, 내 서툰 진심을 꺼내놓는 순간 성령님이 제 안에서 말문을 열어주시는 강력한 성령의 기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내 의식으로 억지로 말을 지어내어 버티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 가득 차 있던 성령의 생각과 눈물이 입술을 통해 물 흐르듯 흘러나오며 차갑게 식었던 가슴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나의 짧은 신음 소리에 성령의 은혜가 부어질 때 비로소 오랜 시간 주님과 깊이 소통하는 기도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것이야말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영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가 완벽하게 하나 되는 거룩한 성령의 체험입니다.
2. 스스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았으나 내 안에서 끄집어낼 영적인 언어가 고갈되어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성경 말씀을 펼쳐 들고 그대로 소리 내어 읽는 것도 기도를 다시 시작하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특히 성경의 시편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슬픔과 고독, 고난과 기쁨 등 거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한 기도의 기록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극심한 상황에 처해 있든 시편 안에서 반드시 나의 현재 마음과 똑 닮아있는 거울 같은 고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위대한 다윗과 믿음의 선진들이 눈물로 드렸던 시편의 고백들을 내 입술로 천천히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영혼의 가장 진실한 기도는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마중물로 시작된 기도는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내 내면의 갇혀있던 언어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가며 막혔던 기도의 물꼬를 활짝 트여줍니다.
더불어 주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정석인 '주기도문'을 영혼을 담아 소리 내어 고백하는 것도 메마른 영성을 깨우는 거대한 무기입니다. 주기도문에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모든 기도의 유형과 권능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기도가 막혀 낙심할 때 주기도문을 입술로 선포하며 마음의 깊은 치유와 영적 회복을 경험한 수많은 성도의 생생한 간증이 이를 증명합니다. 내 생각이 막힐 때는 주님의 완전한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는 것이 기도의 장벽을 깨부수는 지름길입니다.
3.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룩한 침묵'으로 머물러야 합니다
때로는 억지로 입을 열어 무언가 말을 만들어내려 발버둥 치는 대신, 그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침묵 그 자체로도 기도는 위대하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편 46:10)
이 말씀처럼, 모든 세상 소음과 내 생각의 동작을 멈춘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가장 깊은 인격적 만남은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무언가 화려한 말로 하나님을 설득해야 한다는 종교적인 압박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저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시선 앞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깊은 만족이 찾아옵니다. 이 침묵의 시간은 인간의 얄팍한 언어로 채워지지 않아도, 영과 영이 통하고 마음과 마음이 깊이 결합하는 가장 진실한 소통의 자리가 됩니다.
말문이 꽉 막혀 낙심될 때일수록, 오히려 이러한 침묵의 기도가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대한 위로와 평안을 우리 마음에 가져다줍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서투르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거룩한 멈춤을 반복할수록 그 깊은 고요함 속에서 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임재를 더 강력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 103:1-2)
우리 연약한 인간은 거룩하신 창조주 앞에 서면 나의 허물과 부족함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영적으로 위축되거나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겉포장이 아닌 영혼의 중심을 바라보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의 피 값으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귀한 아들과 딸입니다. 자녀가 상처받고 찢긴 모습 그대로 부모 앞에 나아올 때, 그 어떤 부모가 자녀의 말주변을 따지겠습니까? 부모는 그저 자녀가 내 앞에 나아와 품에 안기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가 막히고 영적으로 못난 모습 그대로,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묵묵히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영혼과 육체에 하늘의 새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보시고 우리의 영과 친밀하게 교통하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기도가 꽉 막혀 답답한 터널을 지날 때는 내 의지로 억지 기도를 짜내려 절망하지 마십시오. 정직하고 짧은 고백으로, 살아있는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혹은 주님의 품 안에서 거룩한 침묵으로 머물며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가 막막하게 느껴지신다면, 골방에 앉아 이 중 가장 편안한 걸음 하나를 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순종 위에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은혜가 부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때때로 기도의 문이 굳게 닫히고 입술이 붙어버린 것 같은 극심한 막막함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했음을 고백합니다. 내 힘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종교적인 부담감을 내려놓게 하시고, 친구에게 내 아픔을 털어놓듯 "주님, 내가 지금 너무 힘이 듭니다"라는 짧고 진솔한 한마디 고백으로 성령의 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내 언어가 고갈되었을 때는 시편과 주기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말씀의 마중물을 부어주시고,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나를 자녀 삼아주신 아버지의 따뜻한 품 안에서 거룩한 침묵으로 머무는 안식의 지혜를 주소서. 부족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내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새 힘을 부어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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