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연중에 마음에 그어놓는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주일에 세련되게 정돈된 성전 안에서, 경건한 찬송과 격식 있는 예배의 순서 속에서 드리는 시간만이 진짜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라는 생각입니다. 일요일의 종교적 의무를 마치고 나면, 월요일부터 펼쳐지는 거친 일상의 삶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깊은 비밀 안에서 삶을 조명해 보면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화려한 교회 건물의 의자 밑에 고이 접혀 계시는 박물관의 우상이 아닙니다. 예배는 정해진 특정한 시간, 제한된 장소의 울타리 안에서만 가두어 들여질 수 있는 종교 행위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이라는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내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임재가 숨 쉬는 거룩한 처소로 대전환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매일 식은땀을 흘리며 악을 써야 하는 치열한 일터에서,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비좁은 부엌에서, 그리고 내 육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홀로 신음하는 고독한 병상 곁에서도 얼마든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가장 찬란한 예배의 불꽃을 피워올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거친 세상 속에서 매일 영적인 무기력함에 시달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내가 딛고 서 있는 삶의 척박한 자리가 왜 가장 거룩한 제단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신비롭고 본질적인 영적 원리를 3가지 일상의 처소를 통해 깊이 있게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일터에서 정직함으로 지어 올리는 예배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터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사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예배가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게 필요한 영적 최전방 고지입니다. 밥벌이의 지독한 무게를 견디며 직장에서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거짓 없이 정직하게 일하고, 내게 맡겨진 업무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 내는 그 눈물겨운 태도 자체가 하나님이 향기롭게 흠향하시는 가장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 일상의 노동이 어떻게 예배로 승화될 수 있는지 그 정석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3)
이 말씀처럼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감시하지 않는 아주 사소한 순간일지라도 사람의 눈치를 보며 요령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내 눈앞에 살아 계신 주님을 대하듯 정직하고 신실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태도가 곧 내 온 삶으로 드리는 위대한 예배의 표현입니다.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친 직장 동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묵묵히 성실함의 자리를 지켜내고, 지쳐 쓰러진 주변의 이웃에게 따뜻한 배려의 손길 하나를 건네는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삭막한 사무실과 현장을 거룩한 지성소로 빚어내는 영적인 기적이 됩니다. 거창하고 화려한 종교적 헌신이 아니어도, 내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정직을 심는 행위가 이미 충분하고 넘치는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거대한 영적 위로를 전해줍니다.
사실 저의 개인적인 지난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아도 깊은 깨달음이 하나 있습니다. 과거에 종교적인 울타리 안에서 항상 믿음의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늘 입술로 신앙적인 권면을 나누며 성경적인 설교와 대화만을 삶의 전부로 여겼던 계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익숙하고 안전한 종교의 방을 전격 떠나 세상과 거칠게 부딪히는 날것 그대로의 일터로 직접 뛰어 들어가 생활해 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냉혹한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을 정면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의 눈이 열려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은, 오히려 이토록 삭막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앙의 소음이 가득한 거친 일터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살아있는 예배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처소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짜 믿음의 무게가 증명되어야 할 곳은, 은혜로운 찬양이 흐르는 안전한 교회 안이나 믿음의 사람들끼리 모여 위로를 나누는 다정한 모임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 내 이권이 걸려 있고, 세상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거친 일상의 생업 현장 한복판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며 교회다움의 빛을 잃어버렸는지 가만히 내면을 성찰해 보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답다는 진짜 의미는,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무언가 숭고한 가치를 내면 속에 보석처럼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정직함과 거룩함, 온유함과 성결함의 영적인 품격이 삶으로 증명될 때 세상은 비로소 교회를 두려워하고 신앙인들의 삶을 닮아가려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걸어 다니는 움직이는 '작은 교회'이며, 신앙인이 반드시 장착해야 할 최고의 무기는 바로 거룩함과 성결함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글픈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신앙인들이 세상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교회가 세상의 화려한 힘을 흉내 내기 바꿉니다. 그러다 보니 거룩해야 할 성전 내부에 세상의 추악한 분쟁이 침투하고, 시기와 질투, 미움과 당 짓는 죄악들이 가득 차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영적인 영양실조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에게 본질적인 영적 양식을 사모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여기서 말씀하시는 '신령한 젖'이란 내 자아를 쳐서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거친 일터 한복판에서 이 말씀의 줄을 붙잡고 내 안의 탐욕과 시기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비로소 내가 서 있는 그 비린내 나는 일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예배의 처소로 완벽하게 변모될 것입니다.
2. 눈에 띄지 않는 반복되는 수고, 가정에서 섬김으로 지어 올리는 예배
우리가 날마다 가정 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묵묵히 청소기를 돌리며, 연약한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는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가사 노동 역시 하나님이 눈물겹게 바라보시는 위대한 예배의 자리입니다. 집안일이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고, 매일 도돌이표처럼 똑같이 반복되기에 때로는 나를 무기력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무가치한 가사 노동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수고의 자리 한가운데에 내 얄팍한 불평을 걷어내고, 오직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기 시작할 때, 그 비좁은 주방과 거실은 하나님이 기뻐 춤추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의 처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인생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온몸으로 돌보거나, 노년의 연약해진 배우자의 손을 잡고 챙겨주는 그 눈에 띄지 않는 고독한 일상의 수고들은 주님의 마음을 닮지 않고서는 결코 지속할 수 없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나를 드러내려는 세상의 화려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 소중한 가족들을 묵묵히 섬겨내는 그 거룩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냉랭했던 가정 전체의 공기는 하나님의 따뜻한 임재가 흐르는 예배의 자리로 완벽하게 변화됩니다.
이처럼 가정 안에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는 세상 사람들 눈에는 단 한 줄의 스펙도 되지 않고 전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관객 삼아 드리는 가장 지속적이고 진실한 진짜 예배의 원형일 수 있습니다. 주일에 정갈한 옷을 차려입고 격식과 의식을 갖추어 드리는 성전 예배 시간도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지만, 우리의 위선과 포장지가 다 벗겨진 채 내 날것 그대로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 속에서, 나의 성품과 섬김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진정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참된 기쁨을 누리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내 모든 힘이 빠진 영혼의 지성소, 아픔의 자리에서 신음으로 드리는 예배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눈물겹게 대면하게 되는 자리는, 역설적이게도 내 육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차가운 병상에 누워 있거나 몸이 편치 않아 단 한 걸음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극심한 고통과 아픔의 자리입니다.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성전 문을 밟지 못할지라도,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하나님을 향해 영혼의 눈을 들고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묵직한 신음 섞인 감사를 고백하는 것만으로 그 쓸쓸한 병실 침상은 우주에서 가장 거룩한 최고의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몸이 건강하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릴 때는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교만을 떨곤 합니다. 그러다가 내 육체가 무너지고 극심한 고통의 장벽 앞에 직면하게 될 때 비로소 내 영혼은 척박한 광야 속에서 타는 듯한 갈급함을 느끼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필사적으로 붙드는 영적인 진짜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사방이 절벽처럼 막힌 고독한 고난의 자리에서 오직 하늘의 창조주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이 고백처럼 내 육신의 힘이 다 빠지고 자유롭지 못한 나약한 시간일수록, 우리는 내 인간적인 얄팍한 수단과 방법을 다 내려놓고 오직 중보자 되신 하나님께 100%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가장 깊고 순수한 영적 지성소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 복음서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และ 치유의 사건들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육체의 모진 질병과 아픔으로 인하여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고통당하는 비참한 영혼들의 현장 속으로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겨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깨어진 마음 중심 속에 숨겨진 진짜 믿음의 고백을 확인하시고 육신과 영혼을 완벽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질병의 고통과 상함이 너무나 깊었기에, 그들은 오히려 세상의 체면을 다 던져버리고 주님의 옷자락을 향해 더 간절하고 폭발적으로 나아가 매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눈이 멀어 평생을 어둠 속에 주저앉아 구걸하며 살던 비참한 두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며 간절하게 외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태복음 9:27)
그 지독한 삶의 아픔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두 맹인의 짧고 투박한 신음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의 고백 속에 담긴 정금 같은 믿음의 알맹이를 확인하시고 그들의 어두운 눈을 만지시며 위대한 자유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마태복음 9:29-30)
우리가 평소에 건강할 때는 내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진짜 내 믿음의 민낯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픔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아픔의 자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저주의 처소가 결코 아니라, 내 자아의 껍데기를 깨부수고 주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방이며, 내 영혼의 가장 진실한 알맹이 믿음을 주님께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제단이 될 것입니다.
맺는 말
우리가 드려야 할 진짜 참된 예배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주일 성전 안에서만 머는 박제된 종교 의식이 결코 아닙니다. 예배는 내가 매일 식은땀을 흘리며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는 거친 일터 한복판에서 정직함과 성결함의 양식으로 얼마든지 온전하게 드려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좁은 가정의 주방과 거실 안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가족들을 돌보는 그 숭고한 섬김의 행동을 통해서도 주님은 가장 커다란 영광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나아가 내 모든 힘이 다 빠져 하얀 천장만을 바라보며 조용히 신음하는 고독한 병상의 자리마저도, 오직 천지를 지으신 주님만을 향해 내 시선을 고정하기만 하면 우주에서 가장 거룩한 은혜의 지성소로 완벽하게 변화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일날 멋진 옷을 입고 성전 안에서 의식을 갖추어 드리는 시간만이 진짜 예배인 줄 착각했던 저의 종교적인 고정관념과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십자가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며 내려놓습니다. 일요일의 문을 넘어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히는 월요일의 거친 일터 한복판에서,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을 대하듯 정직하고 성결하게 행하여 내가 서 있는 직장을 살아있는 예배의 처소로 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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