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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말만 가득하고 진정한 사랑은 메마른 시대, 주님이 요구하시는 제자의 증표

by medition604 2026. 9. 23.

우리가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람으로 인해 실족하고 예기치 못한 시험의 장벽 앞에 마주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의 믿음의 동역자들은 흔히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참으라"고 위로의 권면을 건네곤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극심한 환란 통로를 지나는 낙심자들에게는 이 상식적인 권면이 도리어 영혼을 더 무겁게 짓누르는 고단한 하중이 되기도 합니다. 내 눈앞에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이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며 참아내고 더 나아가 남을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정직한 인간의 반문입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가진 본성의 사랑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조건적인 감정의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3장의 배경은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남기신 눈물 어린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약속의 선포입니다. 주님은 전 우주적인 단두대 앞에 서서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가장 엄중한 당부의 명령을 쏟아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우리가 이 냉랭한 세대를 깨부수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3가지 영적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1.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이 아니라, 의지적 순종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절대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주님의 세밀한 축복을 누리기 위한 첫 번째 영적 질서는, 사랑을 내 감정의 기복에 맡기지 않고 '주님의 엄중한 명령'으로 접수하는 일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부드럽게 타협하거나 권면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새로운 명령, 곧 '새 계명'으로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나와 코드가 맞고,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며, 내 핏줄로 묶인 친지나 친구만을 선택적으로 사랑하는 인본주의적 사랑의 신발을 신고 살아갑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해 버린 인간의 본성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에, 나와 관계가 없는 타인이나 나에게 상처를 주는 원수들을 향해서는 단 한 톨의 애정도 베풀어줄 내면의 능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온 국민의 가슴을 산산조각 깨부수었던 세월호 참사 당시, 배가 가라앉는 절망의 타이밍 속에서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자기 목숨 하나 살겠다고 도망쳤던 선장과 승무원들의 참혹한 모습이 바로 이 세대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민낯을 대변해 줍니다.


저의 개인적인 목회 여정과 인생의 걸음걸이를 돌아보아도, 예수 믿고 거듭난 이후 가장 장벽처럼 다가왔던 과제는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삶으로 흘려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영이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솟구치는 죄성의 찌꺼기가 남아있어 참 많이도 기도의 제단을 눈물로 사수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로마서 5장 5절의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의 서광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진정한 이타적 사랑은 인간의 결심과 노력이라는 부러진 지팡이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내 감정을 뛰어넘는 주님의 명령이기에 우리는 먼저 의지적으로 무릎을 꿇고 "성령님, 내 힘과 지혜로는 안 되오니 형제를 품을 수 있는 하늘의 사랑을 부어주소서"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내 옛 자아를 비워내고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주권에 온 영혼으로 복종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심령 속에는 주님 차원의 거대하고 정결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됨을 확신합니다.

 

2. 서로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우리가 주님의 진짜 제자임이 세상 앞에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방의 거절감을 다 뚫어내고 하늘의 신비한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두 번째 관건은, 내 모든 삶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 '제자의 증표'를 삶으로 증명해 내는 일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제자란 단순히 지식적으로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하는 종교 이용자가 아니라, 스승이 걸어가신 거룩한 흔적과 발자취를 그대로 배우고 따르는 삶의 순례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의 내면 중심 속에 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세팅되기까지, 나의 남성을 초월하여 자식을 낳는 '해산의 수고'를 최고의 최선의 사랑으로 감당하겠노라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닮아갈 때 우리 인생의 지경에서는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해 예수의 향기가 향수처럼 날리게 되는데, 그 향기의 핵심 성분이 바로 십자가 사랑의 향기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직전,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종들이나 하던 하찮은 일인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친히 허리를 숙여 수건으로 씻겨주셨던 거룩한 낮아짐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베드로가 깜짝 놀라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한다 거부하자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법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온몸을 씻겨 구원받은 성도일지라도, 매일의 삶 속에서 연약하여 짓는 죄의 얼룩과 상처들은 그날의 밤이 지나가기 전 반드시 눈물의 회개 기도를 통해 보혈로 씻어내는 발 씻음의 제단을 사수해야 합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발을 씻겨주라는 주님의 선포를 기억하십시오. 서로 물고 뜯으며 타인에게 흠집을 내는 세상의 혼탁함을 멈추고, 주님의 사랑을 먼저 맛본 강자된 성도가 먼저 허리를 숙여 이웃을 섬길 때,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막힌 담은 산산조각 깨어지고 주님이 머리 되신 영광스러운 사랑의 공동체가 완공될 줄 확신합니다.

 

3. 사방이 가로막힌 척박한 이 세대 전체가, 오직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의 찌꺼기들을 시원하게 세탁해 버리고 인생의 마라톤 레이스를 완수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은, '세상이 교회를 향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본질'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주일 성수를 완벽하게 기계적으로 지키거나, 하루에 몇 시간씩 종교적으로 기도하고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껍데기 포장지에는 단 1%의 감동도 받지 않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3장 35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뭘 말합니까? 지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랬어요. 사랑하면 그러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의 제자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기 어려운 이웃까지 끌어안고 품고 살아가는 순간이라는 거예요. 세상의 잣대는 지극히 엄격하여 성도들의 사소한 도덕적 허물도 용납하지 않고 전체를 향해 "예수쟁이들"이라며 조롱의 화살을 퍼붓곤 합니다. 우리가 이 거친 항변 앞에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내 계산으로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이웃과 원수까지 가슴으로 끌어안고 품어내는 신실한 사랑의 실천뿐입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그야말로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온통 사랑이라는 단어가 홍수처럼 차고 넘치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정작 홍수가 나면 사방에 물은 가득하나 마실 수 있는 순수한 물은 단 한 방울도 없어 귀해지듯이, 말로만 떠드는 오염된 사랑은 넘쳐나되 가슴으로 책임지는 진짜 진정한 사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지독한 영적 가뭄의 시대입니다.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맞이한 어느 신실한 노부부에게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느냐 물었을 때, 평생 그 흔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노라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술의 가벼운 고백 대신 가슴과 진심의 온기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의 무너짐도 없이 가장 깊은 사랑의 증표를 증명해 내었습니다. 사랑은 입으로 떠드는 소음이 아니라 내 마음의 옥합을 깨뜨리는 가슴의 울림입니다. 한 신학자의 고백처럼 사랑은 믿는 자들의 가슴에 박힌 '예수 제자의 무적의 뺏지'입니다. 세상 모두 사랑이 없어 냉랭함 속에 탄식하며 하나님의 따스한 온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때, 주님의 유언을 받들어 얼어붙은 이웃의 심령 속에 십자가 사랑의 열정을 심어주는 거룩한 복의 근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생활은 입술의 소음이 아니라 내 고집과 이성의 계산기를 파쇄하여 온 영혼으로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말로만 가득한 사랑의 홍수 시대를 멈추고 금혼식 부부처럼 중심의 온기로 제자의 증표인 사랑의 뺏지를 세상 앞에 당당하게 증명해 내십시오. 내 알량한 체면과 세상 자존심의 신발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먼저 허리를 숙여 이웃의 발을 씻겨주는 순종의 제단을 사수할 때,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산산조각 무너질 것이며 사십 년 광야 길 동안 신발 한 짝 해어지지 않게 호위하셨던 아빠 하나님의 웅장한 대역전의 회복 축복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거대하게 쏟아져 내릴 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로만 사랑을 외치며 내 계산기를 두드리고 타인의 허물을 향해 물고 뜯는 허망한 종교 생활을 반복했던 저의 부끄러운 위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스승으로서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먼지 묻은 발을 친히 씻기셨던 예수님의 겸손함을 내 영혼의 옷으로 삼게 하시고, 내 힘으론 안 되오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타적인 사랑을 내 심령 속에 폭포수처럼 부어주사 제자의 진짜 사랑의 뺏지를 가슴에 달고 승리하게 하소서.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하오니, 늘 주님의 자비하심과 따스한 온기가 삶의 모든 자리 위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