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험난한 인생의 걸음걸이를 걸어가면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날마다 겪게 되는 가장 영적인 사이클은 범죄와 징계, 그리고 회개와 회복으로 이어지는 은혜의 순환 궤도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처참한 심판을 받고, 남유다가 바벨론의 포로지로 끌려가던 암흑의 절망의 계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그 사방이 가로막힌 그발 강가 한복판에서 좋으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소명을 받고 눈물의 예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정직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내 힘과 명철을 의지하다가 장벽 앞에 무너져 부르짖으면, 좋으신 아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건져내사 원래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본문 에스겔 36장은 고통받는 당신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 곧 옛 고향인 '고토(古土)'로 반드시 돌아오게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어주겠노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주권적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밤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향해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한 '새 부대'로 우리의 마음 밭을 완전히 갈아엎어 주겠노라 약속하십니다. 내 알량한 기질과 완고한 성품은 내 이성의 노력이나 결심이라는 부러진 지팡이로는 도무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빈 그릇을 만져주시면 우리는 마침내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대전환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대문 빗장을 활짝 열고 결단하며 나아갈 때, '사방이 꽉 막힌 포로지 같은 현실 속에서 내 마음을 옥토 밭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3가지 점진적인 새마음으로의 회복의 단계'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새 마음이란 내 마음에 우상을 도려내고, 은혜의 통로를 가로막은 죄를 보혈로 정결케 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 안으로 걸어 들어가 내적인 갱신을 마주하기 위한 첫 번째 영적 단계는, 성령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내 안에 막힌 죄의 파이프라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묵상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에스겔 36:25)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는 그 거룩한 카이로스의 타이밍에, 우리 영혼과 하늘 보좌 사이에는 무한한 축복이 흐르는 거대한 은혜의 파이프라인이 단단하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삶에 첫사랑의 감격이 메마르고,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의 확신이 없이 마음에 냉랭함과 두려움의 찌꺼기만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보아도 은혜의 생수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세상 살면서 지어낸 영적인 죄와 우상숭배의 이물질들이 그 거룩한 통로를 꽉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눈에 보이는 나무나 돌덩이 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물질과 명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녀나 취미, 그리고 내 자존심과 세상 즐거움에 집착하는 모든 인본주의의 상태가 본질적인 우상숭배입니다. 내 마음이 우상에게 몰두하는 순간, 은혜의 파이프라인은 속수무책으로 차단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막힌 통로를 뚫어내기 위해 날카로운 말씀의 거울로 우리의 숨은 죄를 들추어내어 지적하십니다. 성경 사무엘하 12장에 등장하는 다윗 왕의 역사적인 회심 대목이 이를 증명합니다. 다윗은 무서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도 인간의 영적 맹점 때문에 내 죄를 전혀 보지 못하고 완악함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사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의 하나뿐인 암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다는 날카로운 말씀의 예화로 다윗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 부한 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나단의 추궁 앞에 다윗은 왕의 체면과 신발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며 침상이 썩어 들어가도록 눈물로 통회 자복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본질은 우리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는가의 낙방 자국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 앞에 내 연약함을 정직하게 시인하며 정결하게 고백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우리가 지어낸 영혼의 허물과 죄의 사슬은, 반드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입술로 자복하며 고백되어져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숨긴 채 죄의 굴레에 묶여있으면,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 은혜의 통로를 캄캄한 어둠으로 막아버립니다. 인간의 완악한 본성은 언제나 내 죄를 감추고 남의 죄만 보며 판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주소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영적 민감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의 어릴 적 기억 속에도, 고백되지 못한 죄의 하중이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오랜 시간 아픈 상처의 쓴 뿌리로 남아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생생한 실전 삶의 기억이 존재합니다. 제가 아주 어린 시절, 저희 집마당에 시멘트를 매끄럽게 새로 싹 깔아놓아 절대로 밟으면 안 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없던 저는 마당을 향해 무심코 뛰어 들어오다가 그 축축한 시멘트 바닥을 발로 사정없이 밟아버렸고,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발자국 여러 개를 흉측하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집안으로 들어오던 저희 형님이 그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고는, 무서운 얼굴로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며 저를 엄하게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으니 범인은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완악했던 저는 내 허물이 탄로 날까 두려운 나머지 끝까지 내가 한 짓이 아니라며 바득바득 우겼고, 나중에는 억울하다는 듯 거짓 눈물까지 흘리며 나의 결백을 호소했습니다. 제 눈물의 연기에 속았는지, 아니면 동생의 나약함을 알고도 속아 넘어 가준 것인지 형님은 더 이상 저에게 죄를 묻지 않고 묵묵히 넘어가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목회자가 되어서도, 제 마음 한구석에는 마당의 그 발자국 생각만 하면 영혼이 시려오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죄책감의 하중이 찌꺼기처럼 남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철없던 시절의 작은 허물은 형님 앞에 정직하게 내 입술로 고백되어 용서받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채, 사랑하는 나의 형님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 낙원으로 떠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마음으로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명확하게 알면서도, 실제 행동할 때에는 육신의 정욕과 탐심의 힘에 이끌려 마음에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영적인 곤고함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죄의 껍데기를 감추려 버둥거리는 완고함을 멈추고, 날마다 내 거울을 말씀 앞에 비추어 보며 아주 작은 죄의 얼룩까지도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내 죄를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자복하고 통회할 때,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 맑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에 묻은 모든 우상의 찌꺼기들을 말갛게 씻어내어 주시고, 다시금 하나님과의 은혜의 파이프라인을 시원하게 뚫어 영광스러운 복의 근원으로 회복시켜 주실 줄 확신합니다.
2. 새 마음이란 죽었던 내 영을 새롭게 살리시며, 돌 같은 완고한 마음을 부드러운 옥토 밭으로 바꾸어주심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소한 거절의 파도를 깨부수고 삶의 비즈니스 현장 위에서 기적의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두 번째 영적 국면은, 내 지독한 고집의 환도뼈를 꺾어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부드러운 마음의 밭'을 소유하는 일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부드러운 마음이란 내 생각의 흙이 부드럽게 고정되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족족 30배, 60배, 100배의 거대한 열매를 맺어내는 옥토 밭의 상태를 뜻합니다. 반면에 내 이성의 계산기와 고집으로 꽉 채워진 가시밭과 돌밭 같은 굳은 마음에는 그 어떤 하늘의 능력도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나는 거듭남의 새 영을 소유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의 숨결인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비로소 영적 존재인 생령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타락함으로 하나님과의 파이프라인이 단절되자,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듯 인간의 영은 통째로 죽은 영이 되어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방전된 우리 영을 교체하고 살려내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우리가 그 주님을 영접하는 타이밍에 물과 성령으로 우리 영을 완전히 새로워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단순히 거듭난 것만으로는 완전히 부드러운 마음 밭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했다면 이제 전류가 흐르도록 성령의 충만함의 지배 아래 내 삶의 주권을 완전히 맡겨드려야 합니다. 내 영입 살았음에도 여전히 내 육체의 욕심이 내 호흡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든 다시 딱딱한 돌밭으로 굳어버려 죄의 본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영이 내 육체를 완전히 다스리는 성령 충만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한 핵심 비결은, 지금 내 생각과 시간의 중심 관심사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의도적으로 집중하여 몰두하는 전술에 있습니다. 사업을 하든, 가정을 경영하든 그 일의 계산기를 내가 쥐고 통제하려 들지 말고 오직 생명과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다스림 안에 전적으로 위탁하십시오. 주님을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좋거든 주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할 때 얼마나 더 좋겠느냐는 찬송의 고백처럼,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사귐의 즐거움에 온전히 몰두할 때 과거 우리를 묶고 있던 지독한 죄의 미혹과 불의한 탐심의 사슬은 산산조각 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완벽하게 해방하셨음을 선포하며, 굳은 마음을 제거하사 날마다 푸른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새 마음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에 즐겨 복종하사, 잃어버린 지경과 물질의 부흥을 폭포수처럼 누림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시원하게 물청소 해버리고 대역전의 합격을 거두어들여야 하는 영광스러운 돌파구는, 성령으로 채워진 심령의 상태를 넘어 '말씀과 기도의 액셀러레이터를 사정없이 밟아 즐겁게 순종하는 마음'을 소유하는 일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7)
성령께서 정결케 된 우리 심령 가운데 내주하셔서 우리의 걸음걸이를 이끌어가실 때, 성도는 결코 내 의지나 억지가 아닌 자발적이고 기쁜 순종의 리듬을 타게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기쁨의 순종이 가져다주는 대부흥의 법칙을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라고 웅장하게 확약했습니다. 앞서 비유했듯이, 자동차 배터리를 새것으로 완벽하게 충전하여 엔진 시동을 걸었을지라도 주인이 운전석에 앉아 발바닥으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동차는 단 1mm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충만해졌다면, 이제 내 삶의 핸들을 주님께 위탁한 채 말씀과 기도의 페달을 맹렬하게 밟고 일터 전선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영약이 눈앞에 가득할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챙겨 먹어야 효력이 발생하듯이, 기도의 자리를 기쁨으로 지켜 순종의 발을 내딛을 때 비로소 하늘의 초자연적인 응답의 전류가 실시간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반응하여 온전한 순종의 제단을 쌓아 올릴 때, 하나님께서는 가시 가득했던 우리의 삶의 지경을 향해 전 우주적인 대전환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본문 28절과 29절을 보면 조상들에게 준 축복의 땅을 다시 누리게 하시는 지경의 회복과 함께, 곡식을 풍성하게 하사 기근이 임하지 않게 하시는 찬란한 경제적 물질의 회복을 거대하게 선포하십니다. 성도가 세상의 염려를 내려놓고 영적인 회복을 가장 최우선 순위로 사수할 때, 주님은 우리의 황폐했던 일터와 무너진 가정을 향해 상상할 수 없는 대역전의 마침표를 찍어주십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에스겔 36:35)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지으셨던 완벽무결한 축복의 완성이자 결핍이 제로인 영광의 처소입니다. 내 계산기를 버리고 성령의 법도 아래 즐겁게 순종하며 달릴 때, 전능자께서는 우리의 메마른 황무지 인생을 에덴의 풍요로움으로 완벽하게 연출하여 대역전의 합격을 선물해 주실 줄 확신합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의 부흥은 내 고집과 이성의 계산기를 십자가 앞에 파쇄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죄의 파이프라인을 정결한 회개로 청소하고, 성령 충만으로 내 심령을 부드러운 옥토 밭으로 일구어 말씀과 기도의 액셀러레이터를 사정없이 밟아 나아가십시오. 내 알량한 체면과 세상 자존심의 신발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주님이 예비하신 고토의 제단을 사수할 때,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산산조각 무너질 것이며 황무지를 에덴동산으로 대전환시키시는 하나님의 웅장한 물질과 지경의 대부흥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폭포수처럼 사정없이 베풀어질 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내 인간적인 경험과 계산만을 의지하여 은혜의 파이프라인을 가로막고, 현실의 작은 장벽 앞에서도 돌밭처럼 마음이 굳어버렸던 저의 완고했던 불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내 안의 우상의 찌꺼기들을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세탁하여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의 지배 아래 내 삶의 관심사를 오직 예수 한 분에게만 몰두하는 부드러운 옥토 밭의 심령이 되게 하소서.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하오니, 늘 주님의 자비하심과 따스한 온기가 삶의 모든 자리 위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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