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한한 인생의 걸음걸이를 걸어가면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날마다 마주하는 가장 치명적인 영적 주소는 내 눈안의 시선이 지금 어디를 향해 머물고 있느냐는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의 호흡 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내 눈앞에 펼쳐진 척박한 현실 환경일 수도 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야망의 도표일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상고해 보면 신앙의 영토 안에는 세 부류의 예배자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오직 땅의 일에만 몰두하며 땅만 바라보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고백하면서도 시선이 늘 세상 중력에 갇혀 있기에, 작은 풍랑만 불어와도 조급하게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의 찌꺼기를 생산해 내며 낙심의 수렁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둘째는 땅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입니다. 현실의 결핍 때문에 마음에 근심이 임한 후에야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전히 내 지혜의 주관적 도표를 버리지 못한 채 불안을 짊어지고 기도하기에 온전한 응답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양다리 걸친 '도도 신앙(나도 믿고 하나님도 믿는 신앙)'의 상태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오직 하늘을 먼저 바라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땅의 모든 경영을 해석해 내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거친 시련과 파도가 밀려올지라도 이미 마음속에 장벽을 무너뜨리시는 여호와의 통치력을 확신하기에 모든 한계를 능히 극복해 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무적의 '만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의 위대한 법도는 우리의 평생 신앙생활을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단거리 경주에 비유하며, 신앙의 마라토너가 가질 수 있는 완벽한 승리의 전술을 선포하십니다. 푯대를 벗어난 방향 상실의 무질서를 과감하게 탈피하고, 내 삶의 구원자이신 예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주님의 발자취를 묵묵히 따라가기 위해, '다가오는 새 날의 레이스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쁘게 결단하고 내려놓아야 할 3가지 영적 승리의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승리의 경주는 내 이성의 미련과 집착을 무너뜨리고, 지나간 세월의 무거운 과거의 짐을 먼저 벗어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신앙의 레이스에서 실족하지 않고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기적의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첫 번째 영적 단계는, 나를 얽어매고 있던 과거의 사슬을 십자가 앞에 '즉각 내려놓는 비움'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히브리서 12:1)
단거리 육상 경기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 취하는 첫 번째 조건은 몸을 극도로 가볍게 만드는 최경량의 상태를 사수하는 일입니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유선형의 유니폼만을 걸친 채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해야만 대로를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경주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걸음걸이 속에서, 죄의 유혹 앞에 타협하며 지어낸 허물들은 결국 내 영혼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짐이 되어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도록 삶을 옭아매게 됩니다. 우리가 이 무거운 죄의 짐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내던지지 못하는 진짜 본질적인 이유는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헛된 미련과 집착의 상태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 철봉 밑 모래밭에서 동전 몇 개를 줍는 행복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밀려왔던 지독한 아쉬움의 기억을 복기해 봅니다. 그 허망한 아쉬움의 미련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땅바닥만 바라보고 걸어 다녔던 철없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사소한 요행과 물질에 내 마음 중심을 완전히 빼앗기는 순간, 그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무서운 우상이 되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차단해 버립니다. 인간의 얄팍한 상식과 결단으로는 이 지독한 죄의 법을 이길 수 없기에, 사도 바울조차도 내 육신이 연약하여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 가는 내 무력함을 바라보며 곤고한 사람이라 절규했습니다. 스스로 해야 할 선의 본질을 알면서도 행할 능력이 없는 인간 실존의 딜레마를 돌파하는 유일한 해독제는, 십자가 위에서 "네 죄를 사하노라" 선포하시며 온 인류의 죄 값을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자비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원죄를 단번에 청산하사 우리를 의인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확신하십시오. 나아가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지어내는 자범죄의 얼룩들을 하루가 저물기 전에 정직한 입술로 주님 앞에 온전히 자백하여 청소해 낼 때, 과거의 모든 미움과 상처의 옛 옷은 완전히 벗겨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새 옷의 평강이 우리의 심령 위에 임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승리의 경주는 사방의 침묵과 시련의 하중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복된 약속의 결말을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사소한 거절감과 막막함의 파도를 깨부수고 온전한 신앙의 두께를 쌓아 올리기 위한 두 번째 영적 관건은, 주님이 공급하시는 영적 지구력을 장착하여 '끝까지 버텨내는 순종의 태도'를 사수하는 일입니다.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1)
가슴이 터질 듯한 숨 가쁨과 목마름의 한계를 통과해야 하는 마라톤 경주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는 화려한 속도가 아니라 마지막 결승선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인내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주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의 과정을 돌파하기 위해 인내처럼 소중한 명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선지자는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비로소 우리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주님의 자녀로 구비시켜 주신다고 확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거친 시련의 하중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신앙의 디딤돌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믿음입니다.
아이를 복중에 품은 산모가 모진 입덧과 살을 찢는 듯한 산고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어 마침내 천하보다 귀한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진짜 비결은, 고난 뒤에 찾아올 생명 탄생의 찬란한 환희와 기쁨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의 척박한 터널 속에서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믿음으로 눈물 흘리며 인내하면, 좋으신 아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삶의 전선 위에 가장 완전무결한 타이밍에 갑절의 복된 결말을 선물해 주실 것을 확정하며 참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죄인들의 온갖 수치와 조롱의 채찍질을 당하시면서도, 그 뒤에 놓인 인류 구원의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우뚝 서실 승리의 종착역을 바라보셨기에 십자가의 고통을 기쁘게 참아내셨습니다. 도중에 주저앉으려 드는 인간적인 조급함의 계산기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주신 사명의 끈을 굳건히 붙잡으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며 인내의 제단을 끝까지 지켜내는 자들에게 주님의 초자연적인 응답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될 줄 확신합니다.
3. 승리의 경주는 세상의 가변적인 환경에서 시선을 돌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푯대의 초점을 맞추고 달리는 순간 완성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두려움과 근심의 주관적 도표들을 시원하게 물청소 해버리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려야 하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은, 내 시선의 과녁을 오직 주님 한 분에게만 명밀하게 고정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경주에 출전한 런너에게 있어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응시하며 달리는 방향성의 정렬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눈을 감은 채 푯대를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리는 경찰이 도둑을 앞질러 가버리는 황당한 결말을 맞이하듯이, 내가 아무리 세상 속에서 열심을 내어 밤낮으로 수고한다 할지라도 올바른 영적 과녁을 상실해 버리면 그것은 허공을 치는 허망한 헛손질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앙의 진짜 무서운 범죄를 뜻하는 원어 '하마르티아'의 본질적인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완전히 빗나갔을 때 쓰는 명사입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시선이 미끄러져 세상의 가변적인 중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모든 상태가 곧 영적인 과녁 이탈입니다.
문제가 다가오고 사면초가의 풍랑이 몰려올 때마다, 땅의 소음에 속아 자포자기하려 드는 인간적인 방편의 신발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십시오. 오직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하늘의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음성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 영혼은 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듯 신선한 용기와 하늘의 만나를 공급받아 달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의 거친 레이스를 완주한 뒤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장엄하게 고백했듯이, 우리 역시 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 내야 합니다. 세상 기준의 1등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맡기신 지경 위에서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완주해 낼 때, 좋으신 아빠 하나님께서는 고단했던 우리의 삶을 품에 안으사 "그 무거운 하중을 견디며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았니, 내 사랑하는 자녀야" 눈물을 닦아주시며 하늘의 영원한 영생의 면류관을 풍성하게 씌워주실 줄 확신합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의 부흥은 내 고집과 이성의 주관적 도표를 십자가 앞에 파쇄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과거의 낡은 상처와 우상의 미련을 십자가 앞에 과감하게 벗어 던진 채, 다가올 영광의 상급을 소망하며 말씀의 액셀러레이터를 즐겁게 밟아 끝까지 인내로 완주하십시오. 내 알량한 체면과 세상 자존심의 신발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오직 푯대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영안의 시선을 명밀하게 고정할 때, 우리 앞길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안개처럼 시원하게 파쇄될 것이며 사십 년 광야 길 동안 온 삶의 지경을 빈틈없이 보존하여 주셨던 좋으신 아빠 하나님의 웅장한 대역전의 회복 축복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거대하게 쏟아져 내릴 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눈앞의 거친 풍랑과 세상의 도표만을 의지하며 사방의 환경 속에 마음이 가라앉아 조급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던 저의 불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과거의 얽매이기 쉬운 죄의 흔적들을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씻어내어 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대역전의 즐거움을 소망하며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정결한 인내의 제단을 사수하게 하소서.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힘차게 달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 and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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