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 칼럼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던 관계의 빗장을, 단숨에 허무는 화목의 법칙

by medition604 2026. 10. 2.

우리가 유한한 인생의 걸음걸이를 걸어가면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날마다 마주하는 가장 까다롭고 무거운 마음의 하중은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꽁한 마음과 상처로 얽혀버린 인간관계의 장벽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 힘과 수단으로 현실의 모든 전선을 통제하고 완벽하게 다스려 보려 밤낮으로 열심히 주관적 도표를 그려보지만, 사소한 오해와 거절의 파도를 통과하며 한 번 어긋나버린 소통의 통로는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 차가운 절망의 동굴처럼 영혼을 가로막곤 합니다. 서로를 향해 등 돌린 채 오랜 시간 서목하게 지내며 깊어지는 갈등의 계절은 성도들의 심령 성전을 냉랭하게 얼려버리는 무서운 통증의 주소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기이하게도, 인간의 얄팍한 상식과 자존심의 초침이 완전히 멈추어 버린 그 단단한 단절의 빗장 한가운데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세밀한 주권으로 찾아오사 영적 세계의 위대한 대전환의 은혜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결과를 통제하려 내 손아귀에 꽉 쥐고 있던 이기적인 원망의 껍데기를 번제단 위에 과감하게 내던져 버리고, 먼저 화평의 손을 내미는 온전한 순종의 처소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상처받고 닫혀버린 관계의 밤을 통해, '현실의 지독한 미움과 막막함의 안개를 깨끗하게 치유하고 내 인생을 완전한 하늘의 평강으로 대전환시키는 3가지 관계 회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먼저 손 내미는 화목의 법칙
먼저 손 내미는 화목의 법칙

1. 화목의 법칙은 내 인간적인 방편을 내려놓고, 푯대 되신 주님처럼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무너진 신앙의 레이스에서 실족하지 않고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신선한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첫 번째 영적 단계는, 내 생각의 판단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는 즉각적인 순종'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5장은 죄악으로 가득하여 창조주와 원수 되었던 인류를 향해 먼저 강권적인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좋으신 아빠 하나님의 대속 법칙을 명확하게 선포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린도후서 5:18)


오랫동안 관계가 어긋난 채로 메마른 사막 광야처럼 지내던 사이에서, 누군가 먼저 용기 내어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닫혀버린 소통의 문은 영원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굳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내 입장과 처지를 고집하며 "왜 저 사람이 먼저 나에게 사과하지 않느냐" 주관적 도표를 두드리는 인본주의의 판단은 관계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말갛게 씻어내어 보존하여 주시고 먼저 찾아와 화평의 닻을 내려주셨던 것처럼, 성도들의 관계 회복 역시 내 가당치 않은 자존심의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는 작은 결단에서 비로소 기적이 임하게 됩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수화기를 들고, 먼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즉각적인 순종의 발바닥을 내딛을 때 오랜 세월 영혼을 옭아매던 거대한 불통의 벽은 눈 녹기 시작하듯 흔적도 없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저의 개인적인 가정생활과 목회의 여정을 돌아보아도, 이 화목의 법칙이 지닌 참된 은혜의 가치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저희 부부가 이 관계에 대한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과연 우리가 매일 올리는 주일 제단 뒤편에서, 참되고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기도로 하나님과 긴밀하게 교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서로의 영혼을 정직하게 대면하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륌이자 영적인 교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저희 부부 둘 다 이 본질적인 영성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 온전하다 장담할 수 없는 확신의 결핍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낮아짐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인간관계의 말씀과 소름 돋는 실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 부부 역시 살아가면서 간혹 사소한 생각의 차이로 말다툼을 벌이고 냉랭한 밤을 보낼 때가 존재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내가 먼저 화평의 손을 내밀어 용서의 문을 열기보다는, 내 자존심과 입장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방을 향해 섭섭해하고 불만과 원망의 하중을 마음에 먼저 쌓아 올리기에 급급했던 민낯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나와 아내 사이의 성품의 문제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 본질은 그 이전에 우리 각 사람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맺고 있던 영적인 파이프라인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터져 나온 내적 결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8)


주님과의 친밀한 영적 사귐이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죄인 되었던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사 생명을 주신 주님의 그 웅장한 사랑을 온전히 깨닫게 되며, 주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영적인 교훈들을 내 삶 속에서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거룩한 용기를 공급받게 됩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우리 부부는 그동안 서로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소홀했던 부분과, 완고한 자존심 때문에 먼저 미안하다 사과하지 못했던 서로의 부족함을 눈물로 시인하며 마침내 심령이 온전하게 치유되고 마음이 회복되는 참된 안식의 은혜를 가득 누리게 되었습니다.

 

2. 화목의 법칙은 상대방을 정죄하던 교만을 무너뜨리고, 내 영혼의 자유함을 상속받는 거룩한 용서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사방의 침묵과 지연되는 시간의 하중을 다스리며 주님의 무한한 안식을 수확하기 위한 두 번째 영적 관건은, 내 한계 속에 가라앉아 있던 미움의 자리를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용서의 말씀의 법도를 신뢰하며 나를 해방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의 제단을 통해 성도가 입어야 할 거룩한 용서의 옷을 이렇게 인치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우리가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 대상을 끝까지 정죄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완고한 독을 품고 살아가는 동안, 정작 무거운 쇠사슬에 묶여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하는 존재는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영적인 맹점을 정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용서는 결코 타인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포장지가 아니라, 내 영혼의 갉아먹는 미움의 찌꺼기를 보혈의 능력으로 정화하여 나 자신을 온전한 생명과 평안의 대로로 해방하는 하나님의 세밀한 도우심입니다. 미움을 움켜쥐고 결과를 내 뜻대로 통제하려 들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주께서 나를 용서하신 그 무한한 은혜의 법도 아래 내 주권을 전적으로 위탁하십시오. 원망의 침상을 도리어 승리의 전리품으로 들고 일어설 때, 비로소 내가 지고 있던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깨달으며 하늘의 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줄 확신합니다.

 

3. 화목의 법칙은 갈등의 터널을 믿음으로 관통하사, 이전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단단해진 신뢰의 집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염려와 원망의 흔적들을 깨끗하게 치유하고 믿음의 레이스를 완수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은, 주님께서 깨어진 관계의 주소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시고 '더 깊어진 사랑의 증거자'라는 새 신분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늘의 비밀은, 극심한 갈등과 뼈아픈 아픔의 계절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온전히 관통해 낸 관계는, 아무런 풍파 없이 지내온 밋밋한 관계보다 오히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진실한 이해와 단단한 신뢰의 모퉁잇돌로 웅장하게 세워진다는 실상입니다.
상처를 주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보혈로 정화함을 입는 이 거룩한 회복의 경험은, 앞으로 삶의 전선 속에서 또 다른 인간관계의 거친 돌짝밭 길을 마주할 때에도 결코 실족하지 않고 소망의 새벽 찬송을 부르게 만드는 위대한 영적 자산이 됩니다. 내 생각의 판단을 주님 보좌 앞에 과감하게 내던져 버린 채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할 때, 주님은 우리의 무너진 인간관계의 지경을 천군천사로 진쳐주시고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세세토록 복을 내려 주실 줄 확신합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의 부흥은 내 고집과 이성의 주관적 도표를 십자가 앞에 무너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내 안의 우상과도 같은 사사로운 자존심의 흔적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주님이 먼저 나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오늘 화평의 손을 내미는 믿음의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미움의 껍데기를 전격 내던지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 피차 용납하며 나아갈 때, 우리 앞길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안개처럼 시원하게 무너질 것이며 사십 년 광야 길 동안 온 삶의 지경을 빈틈없이 보존하여 주셨던 좋으신 아빠 하나님의 웅장한 위대한 역사의 온전한 부흥 축복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거대하게 쏟아져 내릴 줄 확신합니다. 우리 새순교회의 모든 처소가 이와 같은 온전한 처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내 상처만을 움켜쥔 채 상대방을 정죄하며 은혜의 파이프라인을 가로막고, 내 이성의 주관적 도표 속에서 결과를 통제하려 들며 허공을 치는 헛손질을 반복했던 저의 조급했던 불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께서 원수 되었던 나를 먼저 용서하사 화목의 손을 내미러 주셨던 그 거룩한 사랑을 내 영혼의 옷으로 삼게 하시고, 미움을 미련 없이 벗어 던져 나 자신을 자유케 하는 정결한 용서의 제단을 사수하게 하소서.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하오니, 다가오는 새 날 내 소망의 일터와 가정 위에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 and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