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한한 인생의 걸음걸이를 걸어가면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날마다 마주하는 본질적인 정체성이란 세상의 가식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신앙의 원형을 사수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학교의 학생이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바라볼 때, 그들만의 때 묻지 않은 신선함과 순진한 진심이 묻어나는 상태를 가리켜 ‘학생답다’ 혹은 ‘군인답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지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회복해야 할 영적인 주춧돌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타락한 세속의 가치관과 철저하게 구별되는 성결함과 거룩한 영성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실체로 나타나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당시에 로마로부터 박해받는 성도들을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로 당시 신앙인들은 큰 환난과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 믿음의 선배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대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시선을 땅의 환경에 묻어두지 않고 오직 하늘의 신령한 소망을 유일한 디딤돌로 붙잡아 고난을 이겨내었습니다.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5절을 보면 "신령한"이란 단어가 세번 나옵니다. "신령한 젖" "신령한 집" 신령한 제사"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사수하기 위해 세속적인 요행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준비해야 할 3가지 거룩한 법도를 교훈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영원한 진리를 통해, '사방이 꽉 막힌 포로지 같은 현실 속에서 내 마음의 성전을 무너지지 않는 복의 근원으로 대전환시키는 3가지 신령함의 법칙'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교회다운 교회는 인본주의의 오염을 거부하고, 오직 변질되지 않은 신령한 복음의 젖을 사모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이기고 주님이 예비하신 기적의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첫 번째 영적 단계는, 내 생각의 판단을 내려놓고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생수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본문이 선포하는 '신령한 젖'이란 사사로운 간사함이나 인간적인 주관적 도표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영적인 복음의 말씀을 뜻합니다. 과거 제가 나이 30대 시절의 치열했던 전선 속에서 목격했던 한국 기독교계는 무려 1,200만 성도의 대부흥을 자랑하던 웅장한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구가 무섭도록 감소하며 황폐함을 마주하게 된 진짜 서글픈 민낯은, 이 땅의 제단들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영성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과는 구별되는 성결함과 영적인 신비로움이 충만할 때 세상이 교회를 우러러보며 닮아가게 되는 법인데, 도리어 오늘날의 성도들은 복음의 순수성을 내팽개친 채 세상을 복사하여 뒤쫓아가기에 급급합니다. 그리하여 제단 내부로 악독과 가식, 시기와 미움의 찌꺼기들이 거대하게 침투해 들어오는 타락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했던 복음은 결코 불신자가 들에게만 일시적으로 투여하는 일종의 일회성 처방전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구원의 선물을 상속받은 저와 여러분일지라도 최후 승리의 왕관을 얻기까지, 낙심의 장벽 앞에 실족하지 않고 끝까지 구원을 사수하여 자라나기 위해 날마다 들려져야 하는 영혼의 생명이 바로 복음의 말씀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 안에 사람들의 빛이 되는 생명이 있었다고 확약하셨습니다. 말씀이 내 영혼에 비추어 들어올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우리 내면 한가운데에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내 얄팍한 상식의 옷을 벗어 던지면 날마다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함으로, 메마른 심령이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복원되는 기적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다운 교회는 내 자아의 고집을 꺾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과 가정의 진짜 호주로 모셔 들이는 신령한 집입니다
우리가 사방의 침묵과 지연되는 시간의 하중을 다스리며 주님의 예비하신 형통을 누리기 위한 두 번째 관건은, 내가 주인이 되어 운전대를 잡으려던 교만을 버리고 '예수님을 내 마음 성전의 진짜 주인으로 세우는 전술'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만군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 땅의 공생애 기간 동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을 만큼,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되어 채찍질과 수치의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마지막 마침표의 음성을 선포하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가장 존귀한 생명의 '산 돌'이 되사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신령한 교회의 모퉁잇돌이자 머릿돌이 되어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완악한 자들에게는 거치는 반석과 걸림돌이 될 뿐이지만, 구별된 성도에게는 영원한 축복의 재료가 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과거 우리 믿음의 옛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누구냐" 물으면 내 이름 석 자를 대기 전에 "저는 어느 대감 가문의 몇 번째 자손입니다"라고 가문의 호주를 먼저 높이도록 철저하게 예절을 훈육하곤 했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는 성도들의 평생의 일터와 소중한 가정의 진짜 호주(戶主)는 과연 누구여야 하겠습니까. 내 가정의 주인 자리를 내가 움켜쥐려 들지 말고 오직 산 돌 되신 예수님께 완벽하게 양도해 드려야 합니다. 최근 소중한 가족예배 제단 한가운데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엄숙하게 묵상하는 가운데, 좋으신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고 싫어하시는 죄악이 바로 우상숭배와 나를 높이는 바벨론의 음녀의 상태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내 중심의 계산기와 탐심을 내던지지 못한 자들의 비참한 결말은 파멸뿐입니다. 내 마음 성전의 호주 자리를 주님께 온전히 위탁하여 드릴 때, 악한 원수 마귀의 세력은 단 1mm도 우리를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완벽하게 보존하여 주실 줄 확신합니다.
3. 교회다운 교회는 겉모습의 형식을 배제하고, 내 중심의 정성을 주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신령한 산 제사가 있는 곳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의 주관적 도표들을 시원하게 해버리고 믿음의 레이스를 완수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은, 내 삶 전체를 '예수의 덕을 선포하는 거룩한 영적 예배의 현장'으로 대전환시키는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수가성 우물가 한복판에서 참된 예배에 목말라 방황하던 여인을 향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과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참되게 예배할지니라"고 예배자의 진짜 중심의 태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예배는 내 기준에서 설교가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감상하는 소비의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내 마음의 옥합을 깨뜨려 중심의 정성을 온전히 주님 보좌 앞에 먼저 올려드리는 드림의 시간입니다.
구약 창세기 4장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쁘게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전격 거절하셨습니다. 제물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고 악독을 일삼던 가인의 마음 중심 자체를 주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불꽃 같은 시선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회개함이 없이 완악함을 품은 채 성전에 나와 드리는 거짓된 제사는, 주님의 마음에 짐이 될 뿐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둠의 행실을 벗어 던지고 주님의 아름다운 복음의 덕을 증거하는 영적인 삶으로 예배를 연결해 나아갈 때, 좋으신 아빠 하나님께서는 다가오는 새 주간 우리의 평생의 생업과 자녀들의 앞길 위에 하늘의 신령한 만나와 복된 평강의 기적을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주실 줄 확실합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의 부흥은 내 고집과 이성의 주관적 도표를 십자가 앞에 파쇄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과 세속의 가식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 채, 날마다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며 내 마음의 진짜 호주를 주님으로 바꾸어 신령한 집을 축조해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예배가 일터의 거룩한 삶으로 온전하게 이어질 때, 우리 앞길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안개처럼 시원하게 파쇄될 것이며 사십 년 광야 길 동안 온 삶의 지경을 완벽하게 보호하셨던 아빠 하나님의 웅장한 대역전의 회복 축복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거대하게 쏟아져 내릴 줄 확신합니다. 우리 새순교회의 모든 처소가 이와 같은 온전한 처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교회다운 교회의 거룩함을 상실한 채 내 수단과 명철만을 의지하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독과 가식, 시기 질투의 찌꺼기를 품고 살아왔던 저의 불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변질되지 않은 복음의 순전한 젖을 날마다 갈망하게 하시고, 내 가정과 일터와 심령 성전의 진짜 호주 자리를 산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내어드리는 정결한 순종이 있게 하소서. 가인의 위선적인 예배를 멈추고 내 마음 중심의 정성을 드리며, 주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예배자의 제단을 사수하게 하소서.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하오니, 예비하신 은혜의 대부흥과 대역전의 기적이 삶의 모든 자리 위에 사정없이 베풀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 and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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