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한한 인생의 걸음걸이를 걸어가면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날마다 마주하는 가장 참혹한 영적 겨울은 내 힘과 노력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장기화된 고난 한 가운데서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절망의 계절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현실의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달리고 노력해보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척박한 환란의 통로 속에서 결국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처절한 고독을 마주하곤 합니다. 성경 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병자의 인생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양문 곁에 위치한, ‘자비의 집’이라는 역설적인 뜻을 가진 베데스다 연못가 그늘 아래 누워, 무려 38년이라는 모진 세월 동안 육신의 질병과 절망의 사슬에 묶여 영혼이 납작하게 가라앉아 버린 인류 최대의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는 단 한 사람만 치유를 얻는다는 지독한 무한 경쟁과 거절의 전선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 매번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나고 거부당하며, 이제는 치유에 대한 갈망마저 안개처럼 증발해 버린 채 죽음만을 기다리던 진짜 인생의 바닥 처소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병자가 세상을 향했던 모든 얄팍한 기대를 내려놓고 완벽하게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누워있던 바로 그 타이밍에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사, 영혼의 지경이 뒤집어지는 위대한 대역전의 조우를 시작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소망이 끊어진 베데스다의 밤을 통해, '현실의 장기화된 고난과 막막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완전한 평강의 대로로 나아가는 예수님의 3가지 대역전의 법칙'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대역전은 세상이 던져주는 조건적인 요행을 내려놓고, 내 삶의 주권자이신 예수 한 분에게만 주목할 때 시작됩니다
우리가 베데스다의 병자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숨 쉬는 기적의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첫 번째 영적 단계는, 세상을 바라보던 눈먼 계산기를 내려놓고 '오직 내 눈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6절은 38년 동안 버려진 채 누워있던 비참한 심령을 향해 다정하게 노크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음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6)
여기서 주님이 던지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는 질문은, 단순히 병의 치유 여부를 묻는 종교적인 껍데기가 결코 아닙니다. 지난 38년 동안 세상의 요행과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만을 바라보며 길들여져 있던 병자의 무기력한 인본주의적 시선을 깨부수고,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생명 자체이신 전능자 앞에 단독자로 바로 서게 만드시는 영혼의 흔들어 깨우심이었습니다. 병자는 주님의 음성을 마주하고도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환경을 원망하며 사람을 의지하려 드는 불신앙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 병자의 마음 깊숙이 고침받으려 하는 강한 갈망과 이룰수 없는 환경으로 오는 절망이 교차하는 처절한 심령을 보셨습니다.하나님의 역사의 진짜 깊은 본질은 내 수단으로 현실의 결과를 통제하려는 헛손질과 내 이성의 나침반을 완전히 십자가 앞에 내던져 버린 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한 분만을 주목할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2. 예수님의 대역전은 내 환경의 자포자기를 파쇄하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시는 말씀에 즉각 복종할 때 확장됩니다
우리가 사방의 침묵과 지연되는 시간의 하중을 다스리며 주님의 무한한 보물을 수확하기 위한 두 번째 영적 관건은, 내 한계 속에 가라앉아 있던 부정적인 생각의 자리를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말씀의 액셀러레이터를 사정없이 밟아 순종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한복음 5:8)
예수님은 38년 동안 병자를 묶고 있던 그 비참한 침상 바닥 위에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시는 종교적 포장지의 행위를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엄중하고 권세 있는 말씀의 날카로운 칼날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선포하셨습니다. 38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힘으로 다리를 펴고 일어서 본 적이 없다는 내 인간적인 상식과 경험의 지팡이를 전적으로 내려놓아야만 하는 불가능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병자가 내 이성의 계산기를 파쇄해 버리고 오직 말씀의 주권에 온 영혼으로 복종하여 발바닥에 힘을 주어 일어서는 즉각적인 순종의 발을 내딛었을 때, 굳어있던 뼈와 근육은 초자연적으로 살아나 대전환의 기적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결과를 통제하려 내 손아귀에 꽉 쥐고 있던 염려와 두려움의 신발을 주님 앞에 벗어 던지고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에 전적으로 귀속할 때, 주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가장 완전한 타이밍에 최고의 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줄 확신합니다.
오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마태복음 14장 17절을 묵상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이 말씀을 가족이 함께 묵상하면서 내 뇌리에 ‘뿐’ 이란 단어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일 것이라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작은 믿음으로 접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큰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가 가진 큰 믿음이 아닙니다. 큰 믿음이 있다면 우리에겐 주님이 필요없다고 했겠죠. 연약하기에, 부족하기에, 우리에겐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작은 순종이 오늘 이 병자의 38년된 질병을 치유하는 큰 역사가 되었듯이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작은 순종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3. 예수님의 대역전은 나를 묶고 있던 옛 절망의 침상을 도리어 승리의 전리품으로 들고 세상 앞에 우뚝 서는 순간 완성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사방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의 찌꺼기들을 시원하게 물청소 해버리고 믿음의 레이스를 완수해야 하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은, 주님께서 우리의 옛 상처의 주소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시고 '완전한 치유자'라는 축복의 새 신분으로 세상 앞에 증명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한복음 5:9)
참으로 놀라운 하늘의 비밀은, 병자가 평생 동안 나를 묶고 조롱하던 절망의 상징이었던 그 무거운 '침상 자리'를, 이제는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위대한 승리의 전리품으로 내 손에 당당하게 쳐들고 걸어가게 되었다는 실상입니다. 여호와 이레, 곧 주님의 전선에서 모든 승리와 회복의 자산은 이미 완벽하게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발을 보호하겠다며 신었던 인간적인 모든 염려의 신발을 주님 앞에 벗어 던질 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다가오는 미래의 참혹한 돌짝밭 길 속에서도 초자연적인 하늘의 요새로 우리의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의 지경을 완벽하게 동행하며 대역전의 축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의 부흥은 내 고집과 이성의 판단을 십자가 앞에 파쇄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비움의 결단에 있습니다. 38년 동안 나를 묶고 있던 절망의 침상과 무기력한 자포자기의 상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진 채, 일어나 걸어가라 명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십시오. 내 알량한 체면과 세상 자존심의 껍데기를 완전히 비워내고 오직 말씀으로 오신 주님만을 내 삶의 가장 맨 앞자리에 모시고 동행할 때, 우리 앞길의 모든 거절의 장벽은 안개처럼 시원하게 파쇄될 것이며 사십 년 광야 길 동안 온 삶의 지경을 완벽하게 돌보셨던 좋으신 아빠 하나님의 웅장한 대역전의 회복 축복이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거대하게 쏟아져 내릴 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현실의 장기화된 고난과 막막함의 장벽 앞에 가라앉아 세상의 요행만을 바라보며 조급해했던 저의 불신앙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거룩한 음성 앞에 내 무력함을 정직하게 시인하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오직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던 초라한 결핍 속에서도 역사하셨던 그 작은 순종의 제단을 사수하게 하소서. 오직 정석 주소의 깨끗한 말씀 숲만 우거지게 하시며, 나를 묶던 옛 상처의 침상을 도리어 승리의 전리품으로 들고 세상 앞에 우뚝 서는 대역전의 회복 기적을 평생의 일터와 온 가정 위에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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