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여러 권 중에서도 요한복음은 유독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다른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곧 사랑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요한복음은 다른 어떤 책보다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스스로를 ‘주의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할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는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사랑의 언어를 세 가지로 나눠봅니다.

1. 요한복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이 구절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 구절이 전하는 사랑은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주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값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과 대가를 따지지만, 이 사랑은 자격을 묻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크기를 깨달을수록,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안에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값없이 주어진 사랑이기에, 우리도 그 사랑을 값없이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함을 요한복음은 조용히 가르쳐줍니다. 세상에서 받는 사랑은 대부분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때 먼저 주어진 사랑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아가페 사랑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조건 없는 사랑을 다른 이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2. 요한복음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이 말씀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명령으로 제시합니다. 사랑은 마음이 내킬 때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도 그 사랑을 조금씩 닮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이 사랑의 명령은 관계 속에서 인내하고 용서하는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결국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과 실천의 문제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성경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엄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영적으로 깊은 혼란과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감정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사랑을 어떻게 법처럼 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험난한 인생의 여정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제 안의 실상을 직면했을 때, 비로소 주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손해 보지 않으려 계산하고, 나와 관계된 이익 앞에서는 눈곱만큼도 양보할 줄 모르는 철저히 이기적인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본성 자체가 이기적인 우리이기에, 주님은 이것을 감정에 맡겨두지 않으시고 '명령'이라는 강력한 울타리를 쳐서 가두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내 힘으로 억지 사랑을 짜내는 종교적 노력이 아니라, 사랑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바로 그 정금 같은 믿음의 용량을 통해서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영적인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령 주님의 말씀이 내 짧은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내 감정과 다를지라도, 신실하신 주님을 믿기에 그분의 명령 앞에 기꺼이 내 자아를 꺾고 순종의 자리에 서야 함을 뼈저린 삶의 연단 속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식었을 때조차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 미운 마음이 들 때에도 상대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실제 모습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실천인 것이죠. 우리 힘으로 우리 노력으로 되지 않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순종이 온전해질 때, 이 사랑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훨씬 견고한 관계의 기초가 되어져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 줍니다.
3. 요한복음은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이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배신과 부인이 예견된 제자들 앞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실수로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하는 순간에도 그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반복해서 확인시켜줍니다. 끝까지 지속되는 이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도 관계 속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워가게 됩니다. 사람의 사랑은 실망과 배신 앞에서 쉽게 식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 실망과 배신을 넘어서까지 지속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관계 속에서도 쉽게 등 돌리지 않는 인내와 신실함을 배우게 됩니다.
맺는 말
요한복음은 값없는 사랑, 명령으로서의 사랑,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이 사랑의 언어를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값없이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우게 하시며, 이 사랑을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흘려보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본문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신학적 전문 조언이 아닙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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