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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조건 없는 사랑에 목마른 당신에게, 요한복음이 건네는 사랑의 확증

by medition604 2026. 9. 3.

성경 여러 권 중에서도 요한복음은 유독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다른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곧 사랑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요한복음은 다른 어떤 책보다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스스로를 ‘주의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할 정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는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사랑의 언어를 세 가지로 나눠봅니다.

요한복음이 건네는 사랑의 확증
요한복음이 건네는 사랑의 확증

 

1. 요한복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이 구절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 구절이 전하는 사랑은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주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값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과 대가를 따지지만, 이 사랑은 자격을 묻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크기를 깨달을수록,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안에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값없이 주어진 사랑이기에, 우리도 그 사랑을 값없이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함을 요한복음은 조용히 가르쳐줍니다. 세상에서 받는 사랑은 대부분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때 먼저 주어진 사랑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아가페 사랑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조건 없는 사랑을 다른 이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2. 요한복음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이 말씀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명령으로 제시합니다. 사랑은 마음이 내킬 때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도 그 사랑을 조금씩 닮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이 사랑의 명령은 관계 속에서 인내하고 용서하는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결국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과 실천의 문제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성경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엄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영적으로 깊은 혼란과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감정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사랑을 어떻게 법처럼 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험난한 인생의 여정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제 안의 실상을 직면했을 때, 비로소 주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손해 보지 않으려 계산하고, 나와 관계된 이익 앞에서는 눈곱만큼도 양보할 줄 모르는 철저히 이기적인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본성 자체가 이기적인 우리이기에, 주님은 이것을 감정에 맡겨두지 않으시고 '명령'이라는 강력한 울타리를 쳐서 가두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내 힘으로 억지 사랑을 짜내는 종교적 노력이 아니라, 사랑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바로 그 정금 같은 믿음의 용량을 통해서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영적인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령 주님의 말씀이 내 짧은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내 감정과 다를지라도, 신실하신 주님을 믿기에 그분의 명령 앞에 기꺼이 내 자아를 꺾고 순종의 자리에 서야 함을 뼈저린 삶의 연단 속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식었을 때조차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 미운 마음이 들 때에도 상대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실제 모습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실천인 것이죠. 우리 힘으로 우리 노력으로 되지 않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순종이 온전해질 때, 이 사랑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훨씬 견고한 관계의 기초가 되어져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 줍니다. 

 

3. 요한복음은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이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배신과 부인이 예견된 제자들 앞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실수로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하는 순간에도 그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반복해서 확인시켜줍니다. 끝까지 지속되는 이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도 관계 속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워가게 됩니다. 사람의 사랑은 실망과 배신 앞에서 쉽게 식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 실망과 배신을 넘어서까지 지속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관계 속에서도 쉽게 등 돌리지 않는 인내와 신실함을 배우게 됩니다.


맺는 말

요한복음은 값없는 사랑, 명령으로서의 사랑,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이 사랑의 언어를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값없이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배우게 하시며, 이 사랑을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흘려보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본문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신학적 전문 조언이 아닙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