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오랜 세월 이어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지게 되는 심각한 착각과 고정관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책을 수십 번 통독하고, 수많은 신학 서적을 읽으며, 거룩한 종교적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채워 넣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와 복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참된 영적 앎의 본질은 결코 데이터나 정보의 축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뇌세포 속에 저장되는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우리가 밟아나가는 치열한 삶의 매 순간순간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조금씩 자라나는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만 동의하던 관념의 하나님을 내 평범하고 눈물겨운 일상의 현장 속에서 인격적으로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죽어있던 종교적 지식은 영혼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능력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리 문답집 속에서 당신의 실상을 보여주지 않으시고, 우리의 깨어지고 상하는 인생 걸음걸이 한가운데로 직접 밀고 들어오사 당신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차가운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져 신앙의 방황을 거듭하는 현대 성도들의 영안을 깨우기 위해,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내 영혼의 진짜 아버지가 되어 그분을 아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3가지 결정적인 영적 순간'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사방이 꽉 막힌 극심한 고난의 순간, 지식을 넘어 인격으로 마주하는 하나님
인생의 날씨가 유창하고 평탄할 때는 도무지 내 교만한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과 은혜의 깊이가,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모진 고난의 계절을 지나갈 때 비로소 영혼의 눈앞에 선명하고 웅장하게 드러날 때가 참 많습니다. 내 연약함의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하는 처절한 바닥의 자리에 홀로 남겨졌을 때에야, 비로소 내 교만의 껍데기가 깨지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모진 연단의 터널을 통과한 뒤 가슴을 쥐어짜며 위대한 신앙의 영적 유익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이 고백처럼 편안하고 부유하던 시절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밋밋한 성경 말씀들이, 고난이라는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되면 내 영혼을 살려내는 유일한 생명줄이자 살아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심장에 와닿게 됩니다. 내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내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순간에 새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뼈저리게 직접 경험하면서, 비로소 책이나 귀로만 전해 듣던 이론의 하나님이 내가 인격적으로 피 흘려 만난 '나의 진짜 하나님'으로 위대하게 바뀌어갑니다. 고난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이 거룩한 영적 지식은,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박사의 가르침이나 두꺼운 신학 책으로도 감히 대신할 수 없는 영혼의 깊은 주춧돌이 됩니다.
사실 저의 개인적인 지난 인생의 실제 걸음걸이 속에서도, 도무지 내 이성과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참혹한 대형 고난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던 어두운 계절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의학적 기술과 힘으로는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의 쇠사슬이 우리 온 가정의 목을 옥죄어 오며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묶어버렸던 비참한 순간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깊은 원망과 거친 불신앙의 의심들이 매일 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내 삶에 이런 잔인한 아픔을 주시는가?"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지독한 절망의 의심은 내 신앙을 파괴하는 독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본심을 더 깊이 파헤치고 알고 싶어 하는 거룩한 영적 갈망과 신앙적 욕구로 위대하게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내 나이가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이라는 좁은 문을 전격적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당시 제가 신학을 시작했던 유일무이한 목적은 오직 하나, 내 삶에 고난을 허락하신 그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그 '앎'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질병의 깊은 통증과 현실의 무거운 가시채에 찔려 괴로워하던 한 가운데서 문득 성경 말씀의 한 구절이 영혼의 내적 조명으로 제 눈앞에 번개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 전도서에 기록된 솔로몬의 위대한 영성 고백이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이 말씀의 진리가 심장에 쾅 박히는 순간, 수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하나님을 향한 거친 원망과 수많은 의문의 실타래가 마치 봄눈이 녹아내리듯 순식간에 싹 씻겨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무지한 우리 인간을 무너뜨리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형통의 날과 곤고한 날을 정교하게 저울질하며 병행하여 이끌어가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의 본심을 영안을 열어 마주하는 감격의 순간, 하늘의 무한한 은혜와 보혈의 용서가 폭포수처럼 제 메마른 영혼 한가운데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 마음 중심이 예배로 바로 서기 시작하자, 기나긴 세월 우리 가정을 가두고 있던 질병의 사슬이 기적처럼 풀어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영광스러운 목회의 길을당당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처절한 고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가장 커다란 영적 유익이었음을 제 생생한 삶의 체험으로 완벽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2. 내 고집을 꺾고 발을 내딛는 순종의 순간, 관념을 깨부수고 실체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두 번째 결정적인 타이밍은, 머리로만 이해하던 말씀의 법을 내 삶의 현장에서 손과 발로 직접 밀고 나가는 '순종의 실천을 단행하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설교를 귀로 듣고 머리로 고개를 끄덕이는 앎과, 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씀의 명령에 내 삶의 체중을 실어 실제로 행동해 보는 앎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거대한 영적 격차를 지니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묵묵히 순종해 보고 그 순종의 끝에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결과를 내 눈으로 목도할 때, 우리의 굳어있던 종교적 지식은 차가운 교리의 관념에서 마침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실의 실체로 옮겨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 사랑과 순종의 앎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15-21)
이 말씀처럼 하나님을 향한 진짜 뜨거운 사랑은 관념의 웅변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내 삶을 꺾어 복종시키는 정직한 순종을 통해 증명됩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의 첫발을 내딛는 바로 그 실천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로만 듣던 가상의 신이 아니라 내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섬뜩할 정도로 신실하신 분임을 몸소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축복의 이정표이자 믿음의 출발점이었던 아브라함 역시, 내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창조주의 청천벽력 같은 명령 앞에서도 오직 주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함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던 위대한 순종의 예배자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었던 위대한 영적 순종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8)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음성을 들었을 당시에는,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가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눈앞에 단 1mm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과 같았습니다. 인간의 짧은 지성과 경험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그는 내 얄팍한 계산기를 두드려 상황을 분석하지 않고, 오직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성품과 신실하심을 100% 무한 신뢰했기에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말씀에 묵묵히 순종했을 때 사방의 대적들을 막아주시고 척박한 거친 광야 속에서도 매일의 쓸 것을 기적처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인도하심을 한 번 경험한 영혼은, 다음번에 더 거대한 믿음의 시험과 순종의 요구가 찾아와도 훨씬 더 담대하고 웅장하게 주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영적 거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처럼 내 고집을 꺾고 단행하는 거룩한 순종의 반복적인 습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가장 견고하고 튼튼한 황금 성벽으로 자라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골방의 깊은 대화, 인격적인 관계의 순간에 완성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완성되는 처소는, 기도의 골방에서 주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오랜 시간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인격적인 관계의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리 대단한 신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기도의 숨결을 통해 하나님과 매일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인 관계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혼 없는 징과 꽹과리의 소리에 불과합니다. 다윗이 모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선포할 수 있었던 위대한 고백의 비밀이 바로 이 친밀한 관계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우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다윗이 선포한 이 거룩한 고백은, 성전 안에서 학자들이 토론하는 딱딱한 신학적 이론이나 객관적인 데이터 지식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거친 광야의 사나운 맹수들의 위협 속에서, 그리고 사울 왕의 잔인한 칼날을 피해 굴속에 숨어 울부짖던 그 참혹한 세월 동안, 목자 되신 하나님 아버지가 내 작은 신음 소리에도 어떻게 신실하게 반응하시며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셨는지 오랜 세월 삶의 밑바닥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뒹굴며 체득해 낸 '관계적 신뢰의 최고치 표현'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에 흐르는 오랜 시간의 깊은 기도의 대화와 인격적인 신뢰가 내면 중심에 두껍게 쌓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거센 풍파나 흉측한 이단의 유혹, 현실의 가난과 질병의 장벽 앞에서도 단 1mm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깊고 견고한 믿음의 요새를 소유하게 됩니다. 기도는 내 요구 조건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도망치듯 가버리는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내 안에 성령으로 살아 계시는 주님과 매일 삶의 아주 사소한 고민까지도 솔직하게 나누며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고귀한 교제입니다. 날마다 골방에서 이 관계적 지식의 용량을 튼튼하게 채워감으로, 지식을 뛰어넘어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내 영혼이 온전히 만족해하는 참된 안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머릿속에 고이 박제해 두는 딱딱한 종교적 정보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세상의 도움을 전혀 청할 수 없어 원망과 의심으로 피눈물 흘리던 내 인생의 가장 처절한 바닥 고난의 자리에서,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시는 당신의 위대한 사랑의 본심을 선명하게 발견하게 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내 이성의 계산기를 십자가 앞에 완전히 꺾어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순종의 현장 속에서 당신의 살아계신 실체를 섬뜩할 정도로 생생하게 증명해 보이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나아가 기도의 깊은 숨결을 통해 매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친밀하게 동행하시며 삶의 모든 쓸 것을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고 공급하시는 신실하신 목자이십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살아가며 여전히 내 처지와 현실의 무거운 질병 장벽 앞에 마음이 짓눌려 낙심해 계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과 인간적인 고정관념을 십자가 앞에 완전히 파쇄해 버리십시오. 오늘 밤, "주님, 내가 이론과 지식의 껍데기 종교 생활을 멈추게 하시고, 내 고난의 현장 속에서, 두려운 순종의 발걸음 속에서, 그리고 날마다 무릎 꿇는 기도의 깊은 관계 속에서 살아 계시는 주님을 날마다 새롭게 대면하는 살아있는 진짜 앎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겸손히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새롭게 함으로 내 모든 삶의 여정을 주님을 알아가는 거룩한 성소로 내어드릴 때, 우리의 메말랐던 인생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완전한 회복,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이 영원히 마르지 않고 강물처럼 샘솟는 축복의 처소로 완벽하게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성경 책을 오래 읽고 종교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채워 넣는 것이 곧 주님을 잘 아는 것인 줄 착각했던 저의 영적인 교만과 가식적인 모습을 십자가 앞에 정직하게 자복하며 내려놓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가정의 모진 질병의 사슬 앞에서 원망하고 의심했던 저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시어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시는 전도서의 위대한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하사 원망이 변하여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진짜 목회의 축복의 유익이 되게 하소서.
내 얄팍한 상식과 이성의 계산기를 두드려 하나님의 명령을 판단하려 했던 불신앙을 멈추게 하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두려운 순간에도 아브라함처럼 오직 주님의 신실하심을 무한 신뢰하며 순종의 첫발을 내딛는 견고한 믿음의 거인이 되게 하소서. 날마다 골방에서 목자 되신 주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인격적인 관계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사, 지식의 껍데기를 뛰어넘어 날마다 살아 계신 주님 한 분만으로 내 영혼이 온전히 만족해하는 참된 안식의 명품 인생이 되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의 자리 한가운데 찾아와 가장 선한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글은 개인적인 신앙 경험과 성경 말씀 묵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교단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판단은 공신력 있는 교단 기관의 입장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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